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는 생각했다. 오늘, 나는 여신이 될 것이다. 오늘의 여행 일정에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짐을 꾸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파르테논 신전을 갈 때는 여신이 될 거야. 나는 반드시 여신이 될 것이다.
오늘만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 온 옷이 있었다. 부슬부슬한 털실이 꼬여있어서 마치 양털처럼 느껴지는 원피스였다. 흰색에 가까운 아이보리 원피스는 오로지 오늘의 여행을 위하여 준비한 것이었다. 혹시 날씨가 추울 것을 대비해서 그레이빛의 니트 재킷을 걸치고 코코아 색 스타킹을 신고 머플러를 둘렀다.
거울을 보았다. 나는 내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
룸메이트 왕언니에게 물었다.
“어때요, 여신 같아요?”
“아주 멋있어! 여신 같아. 정말이야!”
여신 차림으로 변장 하느라 버스에 제일 늦게 올랐다. 모두 이미 버스에 앉아 창으로 내가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트렁크를 질질 끌고 오는 하얀 원피스를 차려입은 아줌마를. 편한 바지나 점퍼 차림이 아니라 눈처럼 하얀 원피스에 스타킹까지 신은 나의 옷차림에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아테네는 따뜻하다고 해서요.”
나는 그냥 그렇게만 말했다. 오랜만에 신은 스타킹은 감촉이 아주 좋았다. 내가 여자라는 느낌은, 그 맛은 스타킹을 신을 때 실감한다.
호텔에서 머지않은 곳에 겐그레아 항구가 있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떠나기 전 머리를 깎았던 항구라고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바로 그 곳이다. 바울의 서원은 무엇이었을까. 중세의 지진으로 모든 시설이 파괴되고 지금의 항구터 역시 물속으로 깊이 가라앉아 있다. 물가의 건물 돌들이 해변의 바위처럼 비죽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그것들이 바로 물속에 가라앉은 교회당의 일부라고 한다. 아, 세월의 덧없음이여.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이야기가 씌어 있지 않았더라면 저 멀리 한국에서 온 이천 년 후의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을 리 없을 터.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바울이 서원하면서 머리를 깎은 그 곳에서 나도 서원을 하고 싶었다. 몇 가지 서원이 떠올랐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람직하지 않은 서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곧 포기했다. 바울은 성스러운 목적을 가지고 머리를 깎으며 서원했겠지만 나의 서원은 바울과는 거리가 있었다. 현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울처럼 성스러운 서원을 하라고 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겠지만 그래도 부끄러웠다. 나의 안녕, 가족의 건강, 사람들과의 평화, 내 욕망의 표출 같은 것을 어떻게 서원할 수 있나.
순례자들은 가이드의 말대로 모두 서서 머리를 깎는 제스처라도 해야 했다. 나의 서원은 비록 세상적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차마 바울처럼 서원은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언제인가 나 역시 바울의 후배(?)이므로 보다 경건한 목적으로 서원할 수도 있으리.
고린도 운하를 보았다. 고린도 운하는 고린도라는 지명만으로도 벅찬 감격을 주었다. 주옥같은 말씀이 가득한 고린도 전, 후서는 바울이 바로 이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편지 한 것이 아니던가. 어릴 때 성경 말씀 중에서 가장 감동으로 다가왔던 고린도 전서 13장을 떠올린다. 이른바 ‘사랑 장’이다. 나는 사랑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애피그램 중에서 이보다 더 깊고 오묘한 말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수십 번, 수백 번 읽었음에도 늘 새롭게 다가오는 그 ‘사랑 장’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썼더란 말이지?
내가 스무 살 무렵,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낼 때, 나는 ‘사랑 장’ 중에서 몇 구절을 써서 창호지 바른 방문에 붙여놓은 적이 있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당시 교회에 다니지 않던 아버지는 그 글귀를 너무도 좋아하셨다. 나는 그때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도 나처럼 삶의 많은 부분을 참아내야 했고, 견디어내야 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 구절을 읽었다. 온종일 헤매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물끄러미 그 구절을 바라보고는 했다.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시간이 너무 많았으므로 그 구절은 나에게 힘이 될 때도 있었지만 더 한층 절망에 빠뜨릴 때도 많았다. 나는 나에게 닥쳐진 상황들이 모두,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견디어야 할 모든 상황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울이 그렇게 말했으므로, 하나님이 그렇게 말했으므로 나는 그 말씀을 붙들고 늘어져야 했다. 사랑은 위대하지만 참혹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질투감마저 들었다. 바울의 깊은 사랑이 편지 곳곳에 스며있었다. 왜, 바울은 그런 편지를 썼을까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고린도는 데살로니카와 함께 로마 시대의 크고도 화려한 지역 중심 도시였다. 부유한 도시, 무역이 성행했던 도시, 신전이 많았고 그러므로 음행이 가득했던 죄악의 도시였다. 어찌 생각하면 요즘의 한국과도 닮아있는 것 같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만큼 역술과 타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불야성을 이루는 모텔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에 쓴 편지처럼 한국에도 같은 내용의 편지를 쓸까? 사랑이 아니면, 사랑이 없으면, 이라고?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하나님의 사랑만인가. 인간과의 사랑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랑’의 규범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은 아가페만 주장하셨을 리 없다. 평생토록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명령하실 리가 없다. 하나님과 이웃만 사랑하라고 하셨을 리가 없다. 나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서 빠져나올 생각을 안 하는 지독한, 무시무시한, 격렬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포함되지 않는 것인가.
나는 좀 혼란스러웠다.
사랑지상주의자라고 자처하는 나는, 단 한 순간도 사랑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고 공언하고 다니던 나였지만 정작 사랑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내려 본 적은 없다는 자각이 나를 더욱 혼돈에 빠뜨렸다.
혼자 머릿속이 복잡해진 채 버스에 올랐다. 여신의 복장을 한 나는 여신답지 않게 좀 멍해졌다. 동행하는 순례자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바야흐로 여신은 정신적인 방황 중이었다. 어제 밤 룸 발코니에서 보았던 빛나던 풀장이 떠올랐다. 나는 좀 더 삶을 구획 지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린도 시내에 있는 바울 기념교회를 찾았다. 그런데, 그 입구, 현관 벽에 고린도 전서 13장 말씀이 대리석 돌판에 새겨 부착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세계 각국의 신자들은 저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아니 멀리 가지 않더라도 지금 나와 같이 순례를 하는 열 몇 분의 순례자들은 저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돌판을 바라보며 나는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대답해 주세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면서요.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면서요. 대체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사랑은 무엇인가요.
옛 고린도 유적지를 들렀다. 아크로폴리스가 저 멀리 산꼭대기에 보였다. 당시 저곳 신전에서는 천여 명이나 되는 여사제들이 기거하고 있었는데 종교의식을 빙자한 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당시에는 그것이 너무도 당연했다고. 나에게는 종교 문화의 쇼크였다. 시대에 따라 죄악시되기도 하고 풍습이나 문화로 덮어지기도 하는 그 애매한 남녀관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리스 초기에 만들어진 아폴로 신전도 둘러보았다. 일곱 개의 기둥이 우람하다. 박물관 뜰에는 목이 없는 석상들이 늘어서 있는데 섬뜩한 느낌이다.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기 위하여, 또는 미친 의협심에 불타 남몰래 절에 숨어들어가, 부처의 목을 자르는 극우파 기독교인들이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했더니만 아니란다. 주요 인물이 죽으면 동상을 세우기 위하여 미리 몸통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해설이 재미있었다. 대량 제작, 빠른 제작의 필요에 의하여 미리 동상의 몸을 만들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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