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시내는 시위로 인해 곳곳에 바리게이트를 쳐 놓았다. 공항도 몇 시간 폐쇄되었다고 한다. 시위 때문에 교통이 통제되어 있어서 어쩌면 파르테논 신전 관광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가이드의 말에 기가 막혔다. 신전에 가야 여신이 되는데 이를 어떡한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하여 시내의 한국 식당에 들렀다. 불고기, 나물, 된장찌개 같은 한국 식단에 순례자들은 반색을 한다. 음식은 아주 맛있었지만 서양식에 익숙한 나는 몇 수저 뜨다 말았다. 쌈에 고추장까지 있는 웰빙 식단이었지만 나는 별 흥미 없었다. 그보다는 오렌지 나무가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는 모습이 더 흥미로웠다. 손이 닿는 키 작은 나뭇가지에도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렸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아무도 따지 않는단다. 조금 더 용기가 있었다면, 그리고 오렌지를 좋아했다면 오렌지 하나 따서 가방에 넣었겠지만 참아야 했다. 나는, 여신이니까.
그리스 시내의 큰 길은 막아놓았기 때문에 빙빙 골목을 돌아서 겨우 파르테논 신전으로 갈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급작스런 대규모 시위 덕택에 그리스 시내 곳곳을 뱅뱅 돌았으니 저절로 시내 투어가 되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겨우 파르테논 신전 밑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 말하면 남산 중턱 쯤 되는 곳에 버스를 주차시키고 낮은 언덕과 계단을 올랐다. 그 언덕 꼭대기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었다. 그림으로만 보았던 파르테논 신전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흥분했다.
우리처럼 길을 빙빙 돌다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하긴 아테네에서 파르테논 신전을 빼고 무슨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신전을 코앞에 두고 또 다시 가이드의 명 강의가 시작되었다. 습기 없고 쾌청한 바람이 살랑거리는 전형적인 봄날이었다. 나는 명 강의를 건성으로 들으면서 한 눈에 들어오는 아테네 시가지의 전경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었다. 한국과 비슷한데 시내 곳곳에도 한국의 고궁처럼 신전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발견한 검은 개 한 마리. 제법 품위 있게 생긴 검은 개 한 마리가 계단에 의젓하게 엎드려 있다. 아니 이 녀석은 어떻게 이곳까지 올라왔을까. 가만히 생각하니 신전 주변에서 기거하는 노숙 개인 모양이었다. 관광객들 사이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는다. 완전히 손님을 맞이하는 호스트의 모습이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개와 사진 한 장 찍었다. 워낙 프레시 세례를 많이 받아서인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모텔을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신전 붙박이 개였다.
파르테논 신전은 보수 공사 중이었다. 눈에 뜨일 정도로 어리숙하게 보수한 것을 다시 뜯어버리는 작업이라고 한다. 유적지 구조물에는 붕괴의 위험만 없다면 손을 대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보존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나 보다. 색이 완연하게 차이 나는 땜빵 자국을 보니 내 가슴이 더 아팠다. 후손 잘 못 만나 신전이 개고생 하는구나.
그래도 멋졌다. 영상물로만 보았던 신전 앞에 드디어 섰다. 바람이 살랑 불고 있었다. 바로 앞, 파르테논 신전은 우리 것이라는 듯, 깃대 높이 매달아 놓은 하늘색의 그리스 국기도 따라서 팔락거렸다. 헬라.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헬라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헬라. 아름다운 나라 이름이었다.
대대적인 복원 공사 중인 거대한 돌기둥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른바 인증사진이었다.
파르테논 신전 앞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전도 꽤 웅장하고 멋졌다. 그 신전에는 아름다운 여신상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모두 모조품이고 진짜는 영국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었다. 정작 아테네에서는 진품을 보지 못하고 영국까지 가서 보아야 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세상은 그래서 요지경이라는 것이겠지?
파르테논 신전은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우리 순례 여행에서 사이드로 빠져있지만 신전 옆의 아레오바고는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중요한 장소였으므로 서둘러 이동했다.
아레오바고. 바울이 아테네 학자들과 변론하던 장소. 저 웅장한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조금도 기죽지 않고 변론했던 바울의 ‘깡’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깡’이야말로 바로 그의 ‘신앙’이었겠지. 두려움 없는 신앙이 정말 부러웠다. 그래, 믿는 사람은 당당하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데야!
좀 전에는 어쩔 수 없이 빙빙 도는 바람에 시내 투어를 했지만 정식 투어는 근대 올림픽 경기장이었다. 새로운 것은 흥미가 없는 나는 건성으로 둘러보았다. 그냥, 꽤 멋지다, 그 뿐이다. 나는 오히려, 길을 건너는 학생들의 옷차림이나 행인들, 상점들, 그리고 광고판 같은 것에 눈길을 돌렸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었다. 가이드가 재미있는 말을 해 준다. 그들의 데모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경찰이나 시위대가 편하게 커피 한 잔씩 들고 있기도 하고 농담도 나누고 시간 봐서 흩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목숨 걸고 시위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놀이처럼 즐긴다는 말에 어떤 여유를 읽을 수 있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하는 느낌?
똑똑하기 짝이 없는 우리 가이드는 그리스 경제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나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나는, 그리스 시내 작은 아파트에서 딱 한 달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너무 서구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루즈하지도 않은 것이 좋았고, 물가도 비싸지 않았다. 살만한 곳인 것이다.
남산에 오르듯 가끔 파르테논 신전에 올라가 지중해의 햇살을 만끽하면서 스케치도 하고 글도 쓰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면서 한량처럼 지내고 싶었다.
한량처럼 지내고 싶은 여신은 미련이 남아 아테네의 거리에 눈길을 떼지 못한 채 공항으로 향했다. 이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 공항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겨우 반나절밖에 머물지 못한 아테네! 너무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그리스를 여행하는 것은 진정한 여행은 아닌 것 같다. 다음에 이태리를 가게 되면 그리스에 다시 들러 제대로 보아야겠다는 결심을 굳게 했다. 그 꿈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출입국 수속을 끝내고 이스탄불로 출발했다. 어두워진 창밖으로 그리스의 땅이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정말 아쉬웠다. 지난날의 영화를 뒤로하고 구제 금융에 시달리는 그리스에게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빌었다.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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